샤리아 법원(이슬람 종교 법원) 기록에 따르면, 부르사의 비단 산업은 14세기 말부터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오스만 제국 궁전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부르사의 비단은 유럽의 귀족 가문과 궁궐 등에 납품되었습니다. 부르사의 비단은 역사적으로 부르사 지도, 실크와 벨벳 등으로 만들어지며 세계적으로 유명했습니다. 비단 산업의 위기가 있었던 1856년에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잔알이병(누에의 미립자병)’이 확산되면서 나방의 수가 줄어 1860년 터키 부르사의 비단 생산량 또한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이후 1888년 ‘파스퇴르 생산’이라는 방법으로 종자 생산 방법이 새롭게 고안되면서, 질병이 없는 누에 종자 연구는 토르코미안(Torkomyan) 선생에 의해 부르사의 ‘다륄하리르(Darülharir)’라는 최초의 누에 학교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단 직물은 부르사의 44개의 비단 직조 공장과 47개의 누에고치 양잠장(養蠶)에서 짜여졌습니다. 1924년에는 누에고치 증권거래소를 포함한 부르사 상품 거래소가 설립되었고, 비단 및 고치 생산 활동이 적극 지원되었습니다. 이후 1940년대 초에는 부르사의 양잠업이 누에고치 생산업자 협동조합 산하로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르사 ‘한’(옛 대상 숙소) 지역에 위치한 ‘코자 한’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현재까지 부르사 비단과 고치 생산, 판매의 중심지로서의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